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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S 2012 현장] 화승 고영립 회장, '전 재산 담보' 내놓고 얻은 성공스토리 공개

BISS 2012 16-10-07 11:56 4,99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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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진행되는 국내 유일 신발전시회 '2012 부산국제신발전시회(Busan International Shoe Show, 이하 BISS 2012)'의 첫날 화승그룹 고영립 회장이 '2012 범한국신발인대회'에서 특강을 진행했다.

신발산업진흥센터는 부산 경제인들이 가장 듣고 싶은 강의 1위로 선정될 정도로 많은 귀감을 얻고 있는 고 회장의 이야기를 공유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나의 도전, 나의 경영'을 주제로 진행된 이번 특강에서 화승 고영립 회장은 자신의 신발산업 성공 스토리에서부터 나눔경영에 대한 철학에 이르기까지 신발산업 종사자들이 특히 공감할 만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공유했다.

화승의 전신인 동양고무공업은 1953년 부산에서 설립됐으며 1945년 해방 이후 고무신 수요가 늘어나면서 '기차표'라는 브랜드로 고무신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동양고무공업은 1980년대 들어 화승으로 회사명을 바꾸면서 글로벌 브랜드들의 신발을 OEM 방식으로 생산, 부산을 신발도시로 만들었다.

동양고무공업에 1기로 입사(1976년 3월)한 고영립 회장은 특유의 뚝심과 앞선 안목, 그리고 탁월한 능력과 리더십으로 2008년 화승그룹 회장에 취임했으며, 샐러리맨 신화를 이룬 인물로 주목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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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영립 회장의 경영철학은 '선택과 집중'

지속적인 가치혁신, 기대 이상의 제품과 서비스 제공,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는 화승, 모든 고객이 즐겁게 다시 찾는 화승이라는 4가지 화승그룹 미션 제창과 더불어, 창의적 도전, 고객우선, 사회봉사라는 화승인의 정신을 공표한 고영립 회장의 경영철학의 핵심은 '선택과 집중'의 경영이다.

이러한 경영철학은 화승그룹의 미래비전계획인 'FLY 2020'을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화승그룹은 신규 사업을 강화하되 무역과 고무제품 분야가 그 중심이며 기존의 자동차부품과 정밀화학, 스포츠패션 등 3대 주력 사업군에서 사업 분야를 본격적으로 확대했다.

신규 사업을 이끌고 있는 고영립 화승그룹 회장은 "수익성 없는 사업을 과감히 구조조정하고 수익사업을 위주로 한 선택과 집중이 이뤄져 신규 사업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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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재산을 담보로 내놓다

르까프, 월드컵 등 스포츠용품 브랜드로 유명했던 화승은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채권 은행들의 자금 회수를 견디지 못해 부도가 났다. 당시 그룹 오너였던 현승훈 회장은 섬유 관련 계열사인 화승T&C의 고영립 사장에게 화승과 화승상사의 대표를 맡겼다.

회사 대표직을 맡은 후 그 속을 들여다본 고 회장은 눈앞이 캄캄했다. 위기에 처한 회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악조건은 죄다 가지고 있었던 것. 자금은 없고 매출은 떨어지며 재고는 쌓이고 있었다. 여기에 '누가 누가 잘린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아 직원들 사기까지 바닥이었다.

그는 직원들 사기를 끌어올리는 작업부터 착수했다. 직장 생활을 통해 터득한 진리 중 하나는 '윗사람들이 자기 몸 사리고 잇속부터 챙기는데 아랫사람들이 따를 리 없다'는 것. 고민 끝에 자신의 전 재산을 맡기고 회사 운영자금을 빌리자는 데 생각이 이르렀다. 고 회장은 곧바로 아파트와 부동산 등 전 재산을 담보로 은행에서 9억3000만원을 빌려 회사 운영자금으로 썼다.

◆ 20년지기 직장 후배를 떠나보내다

전 재산을 담보로 내놨다는 얘기에 직원들은 눈빛부터 달라졌다. 모든 걸 걸고 회사를 살리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고 사장은 각 부서의 부, 차장급 간부들을 불러 놓고 사업 분야가 겹치는 두 회사를 합치고 인원감축을 단행하는 구조 조정안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1200명이 넘는 직원을 300명 이하로 줄이는 고통스런 작업이었다. 옆자리에서 일하던 직원이 다음 날 부서가 없어졌다며 짐을 싸는 일이 허다했다.

고 사장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하나의 원칙만은 반드시 지켰다. 두 사람의 능력이 비슷한 경우 자신과 같이 일해보지 않았던 사람은 남기고, 오히려 친분이 있는 직원을 그만두게 했다. 대규모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큰 반발 없이 진행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공평무사'의 원칙 덕이었다. 그러다 보니 20년 넘게 함께 일한 부하직원을 내보내야 하는 '읍참마속'의 아픔도 겪어야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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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장을 아웃소싱하다

고 회장은 한 가지 일에 빠지면 곁을 보지 않고 몰두한다. 회사 회생을 위해 정신없이 일하던 2004년, 그는 샤워를 하던 도중 겨드랑이 밑에 혹이 만져져 병원에 갔다. 의사의 진단은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이었다. 3개월밖에 못 산다는 말에 그는 절망했지만 '회사는 살리고 죽어야 된다'는 생각에 바로 수술을 받았다.

독한 마음으로 한 달 반의 집중 치료를 거친 뒤 그는 다시 회사로 출근했다. 다행히 수술경과는 좋았고 술을 끊고 운동과 통원치료를 병행한 끝에 그는 회사와 자신을 모두 살릴 수 있었다.

고 회장의 이 같은 성격은 화승그룹의 회생 과정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르까프를 살리기 위해 그는 의류 브랜드의 핵심인 디자인을 외부업체에 맡겼다. 내부에 디자인팀이 있다 보니 적당히 하자는 분위기가 만연해 소비자들이 원하는 디자인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은 '의류브랜드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디자인을 어떻게 외부에 아웃소싱하냐'며 반발했지만 그는 밀고 나갔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디자인이 획기적으로 바뀌면서 매출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회사 직원 20명이 하던 일을 12명이 하게 되니 비용도 줄었다. 화승은 르까프 브랜드만으로 현재 월 15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 화승의 재도약

국내 매출이 회복된 뒤에는 사업 다각화 작업을 벌였다. 국내 판매만으로는 한계를 느껴 외국 스포츠 브랜드의 신발을 생산하는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2002년 9월 베트남에 약 43만㎡(13만평) 규모의 공장을 세웠다.

리복 운동화를 매월 120만 켤레씩 생산하면서 가동 1년 6개월 만에 흑자를 냈다. 공장의 성공적인 운영 덕분에 법원으로부터 화의절차를 2005년에 조기 종결하라는 결정을 받아내면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2001년 당시 9700여억원이었던 그룹 매출은 2006년 1조5000억원대로 급성장했다. 2008년 회장으로 승진해 초고속 매출 신화를 기록했으며 2012년에는 4조2000억원을 달성했다.

한편 화승은 전년도에 이어 올해도 BISS 전시회에 대형부스로 참여해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춘 F/W 워킹화 라인 'The FIT(더핏)'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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